백두산 정계비
19세기 후반, 백두산 정계비에 쓰여진 '동위토문'의 해석을 두고 조선과 청나라간의 귀속 문제가 불거졌다.
이 당시 고종 집권기에 어윤중,김우식 등에게 간도를 조사하게 하여 간도가 조선의 영토임을 주장한 것이다. 이후 청나라가 쇠퇴하고 조선은 '동위토문'에 대한 더 자세한 사항을 조사하기 시작했다.
최근 발표된 논문에선 '동위토문'의 어원은 여진어로, 하천을 가리키는 보통 명사와도 같다고 하여 토문강이 두만강을 가리키는 것일수도 있다는 것에 대한 토지 분쟁을 이어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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