혁명이 일어나기 전 프랑스 국왕의 권력은 앙시앙레짐(구제도)이라는 불평등한 신분제에 바탕을 두었다. 제 1신분은 성직자, 제 2신분은 귀족, 제 3신분은 시민계급, 농민, 노동자로 구성되어 있었다. 이 중 시민계급(부르주아)이 절대왕정 시기에 상공업자를 중심으로 형성되고 성장하여 제 3신분의 상층부를 차지하게 되었고, 앙시앙레짐에 대해 불만을 갖고 개혁을 요구하여 시민혁명을 주도하였다. 혁명의 원인은 프랑스 왕정이 미국 독립 전쟁에 대해 과도하게 지원하면서 시작되었다. 루이 16세는 재정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1789년 삼부회를 소집했으나, 특권 계층에 대한 과세 문제에 대해 표결 방식을 두고 신분 간의 대립이 격화 되면서 제 3신분이 독자적으로 1789년 6월에 국민의회를 구성하였다. 이에 루이 16세가 국민 의회를 탄압하려 하자, 1789년 7월 파리민중이 자치 위원회와 민병대를 조직하여 바스티유 감옥을 습격하였다. 이후 국민의회는 모든 봉건적 특권의 폐지를 선언하고 1789년 8월 인권선언을 발표하여 혁명의 기본이념을 밝혔다. 국민의회는 세금납부액이 많은 부유한 시민에게만 투표권을 주는 제한선거를 담은 새 헌법을 제정하고 해산하였다. 이로써 새로운 헌법에 따라 입법의회가 성립하였다. 혁명의 과격화로 국민 공회가 구성되자, 새로 구성된 국민 공회는 공화정을 선포하고 외국으로 도망가려던 루이 16세를 잡아 처형하였다. 이후 국민공회의 주도권은 로베스피에르를 비롯한 급진 공화파들에게 넘어갔다. 로베스피에르는 농민의 봉건적 부담 폐지와 보통선거의 내용을 담은 새 헌법을 제정하였다. 그러나, 로베스피에르가 공포정치를 실시하여 반혁명 세력을 대대적으로 처형하자 온건 공화파가 쿠테타를 일으켜 로베스피에르를 처형하고 총재정부를 구성하였다. 총재정부가 국내외 위기 관리에 실패하자 이웃나라와의 전쟁에서 공을 세온 나폴레옹은 이를 이용하여 쿠테타를 일으켜 통령정부를 구성하였다. 통령이된 나폴레옹은 국립은행 설립, 국민 교육 제도 도입등 개혁을 실시 하였으며, 나폴레옹 법전을 편찬하였다. 그후 국민 투표를 통해 황제로 즉위함으로써 공화정이 무너지고 제정이 성립되었다.
출처: 네이버 지식백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