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51년 9월 29일 산티아고에서 태어났으며, 아버지는 공군 장성이고 어머니는 고고학자였다. 2002년 칠레 최초의 여성 국방장관에 임명된 뒤 뛰어난 지도력을 인정받았으며 유력한 대통령 후보로 떠올랐다. 2004년 9월 국방장관을 사임하였고 다음해 칠레 중도좌파연합의 대통령 후보가 되고, 2006년 칠레의 첫 여성 대통령이(제39대) 되었다. 2014년에 재선되어 대통령직을 수행하고 있다.
칠레에서 가장 영향력 있고, 카리스마적인 리더십으로 주목받고 있는 여성은 두말할 나위 없이 미첼 바첼레트이다. 스스로 성격이 매우 강하고 완고한 편이라고 평가하는 그는 카리스마가 넘치고 서민적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바첼레트의 정치적 입문은 그의 유·청년기를 통해 나타난 리더로서의 자질과 가족사를 통해 이미 예견된 것이라 할 수 있다.
공군 소장 출신인 그의 부친은 아옌데 정권기의 정부 요직을 맡고 있다 군사쿠데타 이후 ‘국가반역죄’로 지목되어 체포되었다. 고문으로 아버지가 사망한 뒤 그는 학생 신분으로 사회당 유지와 관련한 활동을 지속했으며, 정치적 수배자들을 돕는 활동을 했다. 이로 인해 3개월간 국가 정보국에 체포되었다가 국외로 추방당해 호주와 독일 등을 전전했다.
바첼레트는 90년대 중반부터 칠레 민주주의가 자리 잡는 과정에서 민·군 관계의 완전한 정상화에 많은 어려움이 있다고 판단했다. 그는 제도, 정치, 문화가 안보정책들과 어떠한 상호관계를 가질 수 있을 것인가를 고민했고, 그 해답을 찾기 위해 국립정치·전략연구아카데미에서 군사전략 과정을 수료했다. 97년에는 대통령장학생으로 뽑혀 미국 워싱턴의 미주안보학교에서 1년간 수학했다. 이러한 경력은 그를 최초의 민간인 여성 국방장관으로 만들었다. 일부 언론들은 그의 정치적 삶이 ‘극좌’에 가깝다고 평가한다.
그러나 그는 자신은 ‘민주주의자’이며 ‘민주주의’에서는 폭력이 정당화될 수 없고 그러한 점이 ‘극좌’와의 차이라고 말했다. 또 그는 70년대에는 ‘사회주의자’였지만 현재는 ‘사회민주주의’에 가깝다고 말하고 있다.
‘민주주의는 대표성으로서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점차 더 포괄적이 되어야 한다. 사회적 통합성과 평화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가능한 한 모든 부문을 통합하는 것 외에는 왕도가 없다’는 신념을 가지고 있다. 그는 신자유주의 경제개혁에 따른 시장의 강화는 시민들에게 매우 가혹한 것이라고 전제하고 이를 완화하기 위해 정부의 사회정책이 반드시 필요하다는 인식을 가지고 있다.
바첼레트의 여성정책은 ‘Plan M as mujeres para Chile’(칠레를 위한 더 많은 여성계획)로 압축된다. 이 계획은 ▲교육의 질 향상을 통해 여성을 위한 더 많은, 더 나은 일자리 창출 ▲여성의 평균수명을 고려한 연금 및 사회보장제도 개선 ▲동등한 권리를 누리는 가족 ▲여성에 대한 폭력근절 ▲교육, 노동, 문화 등 다양한 분야에서의 여성차별철폐 ▲여성건강 증진 및 섹슈얼리티 등을 세부내용으로 하고 있다. 섹슈얼리티와 관련해 책임 있는 정책과 교육 및 보육정책에 있어 취학 전 아동에 대한 100% 무상교육 실시와 교육의 질 향상을 공략으로 내세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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